축하를 건네는 것이 힘들어졌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축하할 일에 참석하는 것이 위로할 일에 참석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겼었다. 축하가 어려워진 요즘은 경사에 참석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느낀다. 어느 순간 나란 사람은 사회에서 나 이외의 모든 사람과 모든 방면에서 비교당하고 비교하고 경쟁하고 등수를 정하고 있었다. 경사는 가산점이며 조사는 감점(이겨냈을 때 더 큰 가산점이 붙는다)인 것 같은 삶의 채점방식이 적용되고 그에 따라 질투와 안심이 일어났다. 축하는 어렵고 위로도 그리고 자랑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삶이다.
그러니까 말이라는 건 그 상황과 그 순간에 바로 내뱉어야한다 라는 것이다. 설령 해선 안될 말이었대도 솔직한 감정은 전해졌을 것 아닌가. 흘러간 시간이란 장면을 재해석하고 장면에 속한 인물들에게 각기 그때와는 다른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네게 쉬워지고 싶지 않다. 더욱 어려운 논쟁거리로 네 입방아에 오르고 내리고, 잠깐 논외로 새더라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나를 문제 삼고, 결론이 나지 않는 숙제를 바라보는 눈으로 원망도 하고, 거부할 수 없이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영영 풀리지 않은 미제가 되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네가 나를 쉽게 놓을 것 같아서, 나는 좀 더 어려워지고 싶다.
네게 가벼워지고 싶지 않다. 가장 무거운 이야기는 내려놓기가 두렵듯 네 마음속 한구석에 콕 박혀 있고 싶다. 먼지가 쌓이든 말든, 방이 수십 개든 수백 개든, 평수가 좁든 넓든 내가 누울 집의 주인이 너이면 됐다. 내뱉을 수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어 너의 골칫거리여도 좋다. 가벼우면 빨리 휘발될까 봐, 네게 아주 무거운 이야기가 되고 싶다.
네가 싫어하는 것들이 모여 내가 되고 싶다. 사랑까진 바라지 않는다. 내 욕심이 너의 전부가 될 순 없으니까. 원망이어도, 무거워도 네게 쉽게 꺼내어지지 않는, 누군가의 입을 거치고 거쳐 퇴색될 일 없는 너의 것이 되고 싶다. 새벽바람이 도시를 덮치고, 파도가 백사장을 덮치듯 네 안의 가장 진한 슬픔으로 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수장되고 싶다.
서른 살이 돼서야 깨달았다. 무서운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걸. 무서운 것은 미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자기 자신이라는 걸. 무서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넘어지고 실패한 적 없는 자기 자신이라는 걸. 삶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영원히 자기 자신이다.
란바이퉈, 돌아온 여행자에게
쓰여진 글은 결국 어디에선가 보여질 것이고 쓰여진 글은 나를 대변하기에 쓰여진 글에는 이면이 있다.
다듬어질 생각이 없는 난잡한 온갖 것들이 쓰여진 글 밑에 버려져있다.



